의료소설 '테라피스트'는?
“200,000,000명 (대한민국에서 1년에 병원을 찾는 감기환자의 수).
2,583,100,000,000원(대한민국에서 1년에 감기치료에 소용되는 병원비).
14,100,000,000,000원(대한민국 1년에 드는 암치료비용).
2,000,000,000,000원(대한민국 제약회사의 1년 리베이트비용) -누구를 위한 숫자인가?” “우리 몸에 있는 100명의 의사를 깨워라‘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우리 몸에는 어마어마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이는 5천년동안 내려 온 우리민족의 정통의술과도 일맥상통한다. 내 몸의 치유력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가 의술의 핵심인 것이다. 하지만,
약물오남용 세계1위, 국민1인당 약 소비량 세계 1위의 성적표가 한국사회 현실이다.
병원이 늘어나면 날수록 건강한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의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픈사람이 적어야 하는데, 병원과 제약회사를 위해 환자가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약과 수술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평생 일을 해서 힘들게 번 돈을 고스란히 병원시스템에 주고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 현대인으로서 삶의 프로그램이다.
국방비보다 의료비가 더 높아 더 이상은 국가에서 감당할 수 없어 적은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가져오는 대체의학을 국가정책적으로 연구하고 육성하고자 하는 미국과 온천욕도 의료보험에 포함하여 환자위주와 자연의학에 무한히 개방적인 입장에서 통합치료를 통해 의료비 절감과 의료소비자의 권익을 보장해온 독일의 의료 환경 흐름을 대비해 보면 한국의 폐쇄적인 의료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암환자가 늘어나고 희귀한 질병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병원에서 진단받은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맞는 것 일까?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의료소설 테라피스트 저자는 그런 면에서 순진하였든 것 같다. 종교처럼 현대의학을 신봉했고, 병원에서 주는 약을 한 주먹씩 먹으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간염을 앓고 그날이후 35년간 만성감염인으로 살았고, 40대후반이 되어 병원에서 간경화 판정을 받으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암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업을 정리하고 삶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불현듯 억울한 생각이 들어, 건강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되고, 자연치유에 대해 정보를 접하고, 구당 김남수 옹의 침.뜸치료와 여성환경연대의 치유단식캠프를 통해 기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평생 시달렸든 만성두통이 깔끔하게 없어졌고, HBsAg(B형감염항원)가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뀌었다. 간경화증세도 없어진 너무나 신기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신앙처럼 믿고 신봉해 온 현대의학과 병원시스템의 문제점과 과자처럼 먹어온 약 처방에 대한 분노와 아무리 환자를 잘 고쳐도 라이센스가 없으면 불법시술자가 되는 현재의료법에 격분하여 소설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현재 의료실태를 폭로하는 고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강조에 강조하는 것은 우리 몸에 숨어있는 100명의 의사를 깨우자는 것이다. 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면역을 높여, 스스로 병을 치유하고, 자기 몸의 주체성을 높여 치료선택의 폭을 넓히는 의료법을 개정하자는 시사적인 소설이다. 의료에서 의사가 중심이 아닌 아픈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즉 의료소비자로서 권리를 찾아 환자 중심의 의료문화로 전환(역전)하자는 것이다. 의료소설 ‘테라피스트’ 스토리 동수는 아내가 암으로 죽어갈 때 의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아내가 죽은 후 인생을 방황하고 있을때, 어릴때 부터 가까이 알았든 병준, 종연선배를 통해, 자연치유자 허윤경을 소개받는다. 그동안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끼며 막연히 생각했든 대체의료에 대해 동수의 딸 현정이가 아토피에서 완치되고, 자신 또한 현대의료에서는 치료할 수 없었든 만성간염에서 기적적으로 치유하게 된 체험을 하게 된다. 그후 허윤경이 진행하는 몸과문화 포럼과 단식, 아토피캠프, 침 뜸 봉사실을 통해, ‘내 몸은 내가 살린다’는 취지의 근본적인 몸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새롭게 하게 된다.
자신 몸의 강력한 경험을 통해 이제 동수는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자연치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침뜸과 단식요법을 허윤경으로 부터 본격적인 배움을 시작한다. 반신반의하든 단식과 침뜸을 통해 새롭게 몸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고, 먹는 것이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만들어 간다는 평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이후 동수는 허윤경이 환자에 대한 헌신과 정성을 바치는 치료에 감동되어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윤경의 아픔을 감싸 안으며 윤경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늘 힘이 되어준다. 어느 날 침뜸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허윤경은 한의사들의 집요한 고발에 구속되는 사건과 아토피캠프에서 호전된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거부하며, 학교급식관련 비리가 터져나오면서 학교급식사장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허윤경은 한국의료법에 대한 족쇄와 인간적인 갈등을 할 때, 윤경의 자연치유를 통해 불치병을 치료받은 미국인 사업가 브랫의 적극적인 초청을 받아들여 미국행을 결심한다.
미국에서 물만난 고기처럼 한국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했든 자연치유를 마음껏 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다. 암 환자는 물론 난치병환자의 놀라운 치료효과에 미국사회는 감동한다. 특히 허윤경의 화상침의 효과에 미국사회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표하며, 한국의 침과 뜸 등의 자연치유 효과에 미국의학계가 주목하게 된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존홉킨스 대학에의 강연과 화상침 시술에 CNN방송은 다큐특집을 만들어 세계65개국으로 방송되며, 세계적 명사가 되고 노벨상후보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자신들의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한의사들이 허윤경을 불법시술자(야메)로 몰아부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허윤경은 다시 구속된다.
그 동안 꿈속에서 그리든 월북한 엄마를 할아버지의 기획탈북을 통해 극적으로 감옥에서 만나게 되나 엄마와의 이 만남이 철들고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어릴때 부터 엄마 없이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허윤경은 엄마의 교통사고 사망소식에 한 평생 엄마에 대한 갈증과 갈망으로 가슴에 애린 그리움을 가눌 길 없어, 감옥에서 자신의 굴곡 많은 길지 않은 짧은 생을 접게 된다. 허윤경의 죽음에 온 국민이 허탈감과 자책감에 눈물을 흘릴때, 한림원에서는 치열한 논의 끝에 의학의 페러다임을 바꾼 한국의 진정한 자연치유자 허윤경을 노벨 의학상 수상자로 발표한다. 우리 모두가 테라피스트(치유자) 되자 현대의학의 진보는 눈부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전자기계와 화학산업의 발전이지 의학의 발전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이테크 의료기계가 측정하고 컴퓨터 모니터의 수치에 충실한 기술자가 되어 버린 의사들은 약 처방과 수술을 진행하는 차가운 의료산업의 상인이자 고소득 직업군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오늘날 의료집단은 전에 없는 전문가적 지위와 불공정 상행위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 벤처정신을 가진 의사와 경제에 밝은 기업마저 의료산업계로 진입하면서 약물 오남용과 과도한 건강 검진으로 건강한 사람까지 예비환자로 만들며 시장의 파이를 키워 가고 있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자신이 관심 없다고 피할 수 없는 산업이 바로 의료분야이다. 암검사를 받지 않는다고 국가가 벌금을 메기고 병원의 사망진단서가 없인 장례를 할 수 없도록 전문가와 관료들이 친절하게 법을 만들어 주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병원이 포기한 환자는 국가도 포기한다” 는 것이다.
병원이 포기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살아나지만 만약 이들의 병을 고쳐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의료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테라피스트(치유자)가 되자는 것이다. 전 국민이 몸을 공부하고 기초적인 의료지식을 가지고 전문가에게 자신의 몸을 기계처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상담하고 협의하는 파트너로 생각하며, 내 몸을 내가 치유할 수 있는 몸이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화 시키자는 것이다.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을 사랑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전 국민이 테라피스트가 되는 길을 위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것이 건강한 사회와 건강한 몸을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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