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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래전 개구리양식을 접으면서 쓴글

마른땅 2010. 4. 9. 15:05

안녕하십니까.
저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기슭의 작은 다락골이라는 동네가 고향인
올해 33세살의 청년입니다.

93년 중앙일보 사회면에 난 기사를 읽고 저에게는 커다란 꿈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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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개구리를 살립시다.
"토종개구리 울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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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멸종 위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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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이것이라는 강한 무엇인가에 사로 잡혔습니다.
토종개구리를 양식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하더 군요.

그때부터 저는 개구리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개구리 정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 갔습니다.
그렇게 한해가 가고 이제 키워보자는 마음에 앞서

94년 1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산골짜기 논 200평을 파혜쳐
개구리 양식장을 만들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많은 걱정과 안타까움에도

하면된다,할수 있다라는 강한 믿음으로 간이 양식장을 만들었습니다.
그해 봄에 돈에 올쨍이 알을 엄청난양의 밖께스로 담아 양식장에
풀어 놓았습니다.
저는 양식장에 많이 있는 개구리알을 보면서 흐믓했습니다.
저놈들이 개구리만 되어 준다면...하고요
하지만 이론적인 자료로 인해 어느날 알에서 부화가 되자 3일만에
올쨍이 새끼들은 몰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리도 없이 말이죠..
그때 저는 많이 괴로 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논을 파혜쳐 양식장을 만들고
시작하자 마자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올쨍이쌔끼가 왜 몰살했을까를
고민 했습니다.
농사를 짓던 논이라 잔류 농약이 있어 죽었을까,?
무엇때문일까를 고민하다가
여기 저기 문의도 하고 찾아 보았습니다.
결과는 먹이 었습니다.
올쨍이로 부화되고 올쨍이 먹이가 없어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쨍이 먹이는 무엇일까하고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소비하고, 각종 사료,초유,등등 안해본 방법이 없이
연구한 결과 올쨍이가 먹는 먹이를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95년 봄에 개구리의 알을 수거하여 양식장에 풀고,
올쨍이로 부화된 올쨍이들에게 먹이를 투여하여 성공하였습니다.
그때의 먹이를 주면 새까맣게 모여드는 올쨍이 떼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올챙이가 점점 커지고 개구리로 변태를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일 후 또다시 그만던 올쨍이가
개구리로 변태하자 마자. 또다시 몰살...
충격,충격 정말 이렇게 힘든 것일가.?
그때 저는 많은 괴로움에 빠졌습니다.
벌써 2년째 논을 놀리고 있다고 부모님의 성화....
계속되는 실패 ........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할수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아니라,포기하기 때문에 할수 없는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고쳐 먹고 개구리변태후의
개구리 습성및 먹이에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먹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96년 개구리 알을 모으고 부화시키고 변태를시키고
어린개구리들을 끼웠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못합니다.
어린개구리의 모습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큰개구리를 먹이가 없어 또다시 몰살당할위기에서
저는 너무나 어린개구리가 불쌍하고 사랑스러워서
산에 방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또 한해를 벌써 시작한지 3년이 넘어가는데라는
회의를 했지만 다시 했습니다.
여기저기 기욱거리다가 우연히 신문에 63빌딩 수족관에서 김학렬과장님께서
성공한 것이 있다는 내용을 알고
3번의 63빌딩을 방문하고 사정을 얘기하고 애원을하여
먹이를 키우는 법을 전수 받고 집에서 연구하여 성공 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여 완전한 먹이를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다음해인 97년 대망의 개구리를 끼우는데 성공하여 그해 겨울 개구리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98년 대량양식을 위해 시설를 만들고 시골집에 300평 추가 웅덩이공사
등등을 준비 하였으나 시설비가 많이 들어서 결국은 포기 하고 있던 중에

훌륭한 종자의 개구리를 구하기 위해
백령도을 가게되었습니다.
해병대 후배들의 도움으로 개구리를 잡아서 돌아와서 기우고 있던 중

99년 우연히 먹이를 연구할때 알았던 자라를 끼우시던 분이 사용하던
대청댐 상류에 있는 놀고 있는 양식장을 저에게 빌려 줄테니 열심히
해보라는 말에 힘을 얻어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희망은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한명과 함께 집도 수리하고 양식장 정리도 하고 시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먹이 배양실도 만들고,어린개구리 인규베이터,부화실등등으로
무진장 고생은 했지만 기뻤습니다.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99년도에 개구리를 끼웠습니다,토동개구리를 말입니다.
상호도 만들었습니다, 속리산 향토 토종개구리 양식연구소 라고요
그렇게 하여 가을에 커다란 양식장에는 개구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먹이를 주면 숨어 있던 개구리가 정신 없이 뛰어 다닙니다.
그렇게 끼쁨도 잠시.
개구리를 끼우는 모습을 보던 양식장 주인 아저씨는 저에게
너무나 충겨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양식장을 2억에 사던지 아니면 양식장을 비워 달라는 것이 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 그대로 였습니다.
제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월급받는것 개구리 연구한다고 다쓰고
가나한 사람보고 2억이라니...........
그래서 여기저기 선배님들을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지만
워낙에 큰돈이라 아무도 선뜩 빌려주지도 않고 또한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제 주위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저는 많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제가 키우던 양식장에 농약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시골양식장도 포크래인을 불러 메우고 올해부터
다시 농사를 집니다.
이것은 사회에대한 저의 무언의  반항이었으며 실망이었습니다.

그렇게 밀레니엄 2000년을 보내며,
그간 저에게 도움이 되어 주셨던, 강원도 내수면 시험장에계신분에게
올팽이 부화하는것거을 알려 드리고
몇해전 신문에 낳더라구요,개구리 수만마리 부화성공하여 방생했다고
그리고 귀뚜라미을 키운다는 김명소아줌마도 tv에서 나오더군여
귀뚜라미 양식하는 법을 다른사람에게 가르쳐 주지 말라고
사정하던 아줌마가 귀뚜라미 양식 성공했다고 나오고,

실로 저의 젊음을 불태운 토종개구리 양식 이것을 여기서 중단 해야 할까요.

무궁무진한 판로가 있고,공급만 이루어 진다면......
새로운 음식문화가 탄생될텐데요.
올겨울에는 개구리가 얼마나 할까요.
작녁에는 1500원에 팔렸는데도 없어서 못 팔었으니까요
또한 개구리 잡이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더욱 귀합니다.
몇몇 대학 교수님들도 연락도 해보고 정말 가능하냐고
문의도 받았습니다.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이병재교수님,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과학과 김선창교수님
모두가 개구리를 이용한 항암제,암치료재등을 축출하시는 분들입니다.
개구리가 암도 치료하는 것 아십니까,
각종질병의 치료제로도 사용되는데,
개구리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투자자가 나온다면,시설만 투자해 주신다면
전국의 개구리 공급할수 있도록 양식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 하여 저는 뱀양식도 이제는 가능합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동물농장의 꿈이요...

저의 노하우를 살릴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출처 : 물새의 삶 그리고 여행
글쓴이 : 물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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