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돌처럼 굳어 버린 아내에게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요? 이제는 얼굴조차 보기 싫다고 합니다. 빨리 이혼하자는 소리만 해요』
필자를 찾아온 어느 50代 CEO(최고경영자)의 이야기다.
『아내가 외도를 했는데…』
한 중년 남성은 말끝을 맺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혼란 속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家長(가장)으로서 가족의 문제는 되도록 집안에서 해결할 일이지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젖은 남성들이 근래에 상담하러 많이 찾아온다. 그만큼 부부문제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부부들이 얼마나 가느다란 끈으로 묶여 있는지 보여 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30代 주부들은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고 속상해한다. 40代 주부들은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잔소리하지만, 속으로는 늦게 들어오는 걸 좋아한다. 50代 주부들은 남편이 출장 간다면 노골적으로 좋아하고, 60代 주부들은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온다고 남편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한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지 모른다.
<30代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40代는 뒤처지는 실력을 인맥의 끈으로나마 잡아보기 위해 술자리에 참석한다. 50代는 불러 주는 데 없는 초라한 신세랄까 봐 모임을 찾아 기웃거리고, 60代는 마누라 눈치 보고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해서 밖에서 빙빙 돈다>
이런 힘든 상황을 평생의 반려자라는 아내들이 몰라 주니 얼마나 서글플까? 돈도 없고, 힘도 빠지고, 가족들과의 대화에도 끼지 못하는 50代 이상 남성들의 분노를 짐작할 만하다.
「黃昏 이혼」이 이혼의 18.7%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5년 이혼한 다섯 쌍 중 한 쌍이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들이다.
이른바 「黃昏(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통계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결혼을 늦추거나 동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8.7%라는 황혼 이혼율은 엄청난 비율이다. 결혼생활 10년, 20년을 그럭저럭 잘 넘겼다고 마음 놓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전쟁의 피바다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1960년대의 지긋지긋한 가난도 이겨낸 한국의 가정이 왜 이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신세가 됐을까? 나는 1993년 「혼수전쟁」이라는 책을 쓰면서 한국 가정의 붕괴를 예견했다.
先見之明(선견지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27년간 살면서 이혼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혼한 사람들의 자녀들이 이혼하는 확률이 무척 높다는 사실을 바로 옆집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가정에도 「가정 붕괴」의 大재난이 올 것을 예감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가족치료와 부부치료를 공부했다.
결혼한 부부의 절반이 이혼하는 미국과 독일 사회의 대처법을 배우기 위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미국 시애틀의 「가트맨 인스티튜트」에서 전문가 훈련을 받았다.
부부 상담을 위해 필자를 찾는 사람들은 성별·학력·지역·소득수준이 다양하다. 연령도 20代부터 70代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지난 3월 초 필자가 제작에 참여한 MBC TV의 스페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행복한 부부, 이혼하는 부부」가 방영된 후에는 고학력층 부부의 상담신청이 부쩍 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필자를 찾은 한 검사는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던 부부 사이가 불과 한두 달 만에 그렇게 빨리 좋아질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얼마나 빨리 좋아지는지는 얼마나 처방대로 잘 실천하는지에 달렸지요』
그 검사는 또 물었다.
『저는 잘 하고 싶은데 집사람은 노력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변하고 싶은 분부터 먼저 변하세요. 부부는 유기적인 시스템이라 한쪽이 변하면 나머지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혼의 원인, 과연 성격 차이일까?
무엇이 불행한 결혼과 이혼을 초래할까? 부부치료에서 진단만 정확히 잘 해도 성공의 50%는 보장된다. 대개 『못 살겠다』고 하는 부부들은, 그 원인을 성격 차이로 돌린다.
『아내의 성격이 꽉 짜인 네모 돌판 같아요. 빈 틈이 없어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어찌 살겠습니까?』
『남편은 우유부단하고 번번이 약속을 어겨요. 내가 약속 안 지키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각서까지 써 놓고 어기니까 어떤 땐 「날 약 올리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화가 치밀어요』
부부갈등의 원인을 성격 차이로 본다면 어떤 해결책이 나와야 할까? 자신의 성격을 바꾸든지, 상대의 성격을 억지로 참아야 할 것이다. 공연히 성격 탓을 하다가 인격을 비난하게 되고, 누가 잘 했냐 못 했냐, 누가 더 잘났냐 못났냐로 확대되다 급기야 부모 탓, 조상 탓까지 나오기 십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 차이보다는 가치관이나 양육방식이 달라서 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집집마다 부부싸움의 「18번」으로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필자를 찾은 어느 30代 家長은 『아내가 자녀들을 너무 잡고, 몰아친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아이의 숙제나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노래방 가자』, 『찜질방 가자』, 『여행 가자』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게 못마땅하다. 이 부부의 싸움은 딸의 돌 무렵부터 시작되어 10년 내내 반복되고 있다.
계속 누가 옳으냐 그르냐, 누가 잘났냐 못났냐로 다툰다면 이들의 갈등은 손주가 태어난 후에도 지속될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이혼 사유로 알고 있는 「성격 차이」, 「가치관 차이」는 이혼의 직접 요인이 아니다. 가트맨 박사는 『부부싸움의 내용이 외도·폭력·돈 문제·고부갈등·술 문제같이 심각한 것이든 내복 갈아입기같이 사소한 것이든 부부의 불행이나 이혼과는 상관관계가 미미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성격 차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결혼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외도·폭력·고부갈등·돈 문제·性 문제 등 부부 갈등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부부싸움의 「방식」이 문제라고 한다. 대화 방식에 비난·방어·경멸·담쌓기가 담겨 있으면, 그 부부는 15년 이내에 이혼할 확률이 92% 이상이라고 한다.
지난 35년 동안 3000쌍 이상을 추적 조사한 이 방대한 연구의 결론은 「말과 행동을 바꿈으로써 부부관계가 개선되고 결혼의 행복도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부부들은 오늘도 서로 비난과 경멸이 담긴 말들을 쏟아 내면서, 『왜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 하면서 엉뚱한 해답을 찾으려 할지 모른다.
이혼으로 가는 말투
필자가 강의나 치료 중에 『부부간에 부부싸움을 효과적으로 하는 대화법이 있다』고 말하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이 가끔 있다. 그들은 흔히 이렇게 반박한다.
『말만 바꾼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다. 말만 바꾼다고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치료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계」를 치료하는 것이 목표다. 거친 대화를 나누면 부부관계는 쉽게 망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표현 방식을 조금 다르게 함으로써 거부감을 주지 않을 수 있고, 오해를 풀 수도 있고,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말만 조금 바꿔도 부부 사이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진다. 애인 사이, 동성 친구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상사와 부하 사이, 심지어 점원과 고객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은 일관되게 발견된다.
가트맨 박사는 이혼을 초래하는 네 가지 원인 중 첫째가 「비난」이라고 한다.
「당신은 왜…」로 시작하는 대화는 대개는 비난성 발언이다. 「도대체」, 「항상」, 「한 번도」, 「결코」, 「절대」 등의 말도 비난의 뜻을 함축한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잘못을 개선해 보자는 의도일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내가 인격적으로나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인신공격으로 느껴진다. 당연히 기분이 나빠질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면 상대는 반사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이것이 이혼으로 가는 두 번째 지름길인 방어다.
『그러는 넌 뭐가 잘났다고』
『네가 날 못 믿는데 내가 어떻게 널 믿냐?』
『네 탓이지 내 탓이냐?』
이렇게 되면 상대방의 과오를 입증하기 위해 이 잘못, 저 잘못 과거의 잘못까지 모두 거론하여 점점 싸움이 확대된다. 방어적인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은 상대한테 당한 억울함이나 설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꺼내 들고 『봐라,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라고 대든다.
그래서 원래 풀려고 했던 문제는 오리무중이 되어 버리고 서로 누가 옳으냐 그르냐, 잘났냐 못났냐로 대화가 변질되어 버린다.
불행한 부부들의 부부싸움은 대개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뭔가 결정타를 칠 만한 毒針(독침)이 없을까 하여 던지는 것이 「경멸」의 말이다. 이것이 이혼으로 가는 세 번째 지름길이며, 독성이 아주 강하고 지속력도 크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경멸을 받은 상대는 4년 이내에 감염성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을 정도로 경멸은 우리의 면역력까지 파괴한다. 노골적인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재수 없게」, 「복에 겨웠구나」, 「주둥이 좀…」 등이 경멸성 발언이다.
경멸의 본질은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것이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것이며 어린애나 하인 취급하는 투의 말도 경멸에 포함된다. 때로 말은 하지 않더라도 표정만으로 충분히 경멸을 표현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의 공격에 민감하다
가트맨 방식의 「부부 대화 분류법」에서는 눈을 위로 굴리면서 한 쪽 입만 뺨 쪽으로 당겨 올리는 냉소의 표정은 경멸에 포함된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너나 잘 하세요」, 「어쭈, 주제 파악 좀 하시지」 등은 모두 상대를 나보다 아래로 여기는 경멸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좀처럼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자랑삼아 말한다. 전문가가 볼 때 이들은 이혼으로 가는 네 번째 지름길인 「담쌓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담쌓기는 서로 눈 마주치지 않기, 말 안 하기, 상대가 말하는데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들여다보기, 전화기 꺼놓기, 집에 늦게 들어오기, 각방 쓰기, 외박하기, 가출하기, 별거하기 등 모두 이혼이라는 종착역을 향한 여정길이다.
한 부인이 『잘 살아 보자고 한 언쟁이었는데, 남편이 「더 이상 너랑 살기 싫다」면서 이혼하자고 할 때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한다. 나는 『언쟁할 때 부드럽게 시작했느냐』고 묻는다.
『그야 뭐 화가 나면 감정이 격해져서 몇 번 소리를 지른 적도 있지요. 매번 그런 건 아니에요. 남편이 좀 듣는 척이라도 하면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데 마이동풍이니 큰 소리가 안 나오겠어요?』
가트맨 박사에 따르면, 부부 대화의 80%는 아내 쪽에서 먼저 시작하는데 이때 아내의 음성이 크고 격하면 이혼할 확률이 94%로 더 올라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뇌에서 공격을 감지하는 부분(소뇌 편도핵)이 남자의 경우 훨씬 민감하고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큰 목소리는 상대(남성)에게자칫 「공격」으로 인식되고 그러면 즉각 뇌하수체에서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온몸에 근육이 긴장되고 「싸울 거냐, 도망갈 거냐」의 반응이 나온다. 이것을 감정의 「홍수」라 한다.
여성도 그럴 수 있지만 여성의 뇌는 남자의 뇌보다 공격에 대해 훨씬 유연하고 복합적으로 반응할 뿐 아니라 평정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 시간이 빠르다. 여성이 부드럽게만 말을 시작해도 이혼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혼을 막기 위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무엇일까?
『열심히 일해서 월급 통장까지 다 아내에게 주고 밖에서 한눈팔지 않고 술·담배·외도 따위로 아내 속 썩이지 않았으면 남편 노릇 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내는 맨날 못 살겠대요. 나랑 대화가 안 되고 숨이 턱턱 막힌다니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내를 인정하지 않는 말투들
이런 남편에게 주는 나의 처방은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여 보라』는 것이다.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라니. 아니, 이사하는 것, 아이들 학원 정하는 것, 생활비 쓰는 것 등을 죄다 아내가 알아서 하게 맡기는데 더 이상 무슨 영향력을 받아들이라는 것인가?』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투는 다음과 같다.
「제발 남편 좀 들볶지 마라」
「당신이 알아서 한다고 그랬잖아」
「하고 싶으면 너 혼자 해」
「결론이 뭔데?」
이런 말을 듣는 아내는 존재가치를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마치 절벽 앞에 선 기분이라 산을 넘고 바위를 뚫어야 할 것 같은 투쟁정신이 고취된다.
반대로 아내를 무장해제시켜 주고 동지로 껴안아 주는 남편의 효과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래, 한 번 생각해 볼게」
「당신 말도 일리가 있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역시 당신이야」
「당신이 말 안 해 줬으면 깜빡 잊을 뻔 했어」
이런 말은 아내를 굴종시키거나 아내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내의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아내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태도이다.
행복한 부부들의 부부싸움 방식
이혼하지 않는 부부라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극심한 불행을 느끼면서도 『내 사전에 이혼이란 없다』만 되뇌인다면 참 딱한 노릇이다. 기왕 살 거라면 행복하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부부가 가끔 싸우면서도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 가트맨 박사의 답은 「그렇다」인데, 그 내용은 일반인의 예상과는 다르다. 행복의 비결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데 있지 않고, 문제를 「어떻게 보고 대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행복한 부부나 이혼하는 부부나 모두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69%나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부부들은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풀 수 있는 31%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반면, 불행하거나 이혼하는 부부들은 이 풀리지 않는 69%의 문제들을 가지고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관계만 망친다고 한다.
지겹게 싸우는 부부싸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싸울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싸운 뒤 개운하지 않고 분하고 억울하다.
―한참 싸우다 보면 처음에 뭐 때문에 싸웠는지 모른다.
―한 가지로 싸우다 이것저것 튀어나와 수습이 안 된다.
―싸워 봤자 상처만 나니까 차라리 안 싸우는 게 낫다.
반대로 「쿨」한 부부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인신 공격을 하지 않는다.
―격한 감정을 식혀 가며 논쟁한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피할 말을 가려 한다.
―싸움이 끝나면 뭔가 시원하고 가까워진 것 같다.
―새로운 싸움이 기대된다.
우리가 언제나 쿨할 수만은 없다. 행복한 부부도 「비난·방어·담쌓기」는 종종 한다고 한다. 하지만 「경멸」은 좀체로 하지 않는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해 시도를 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다시 말해 행복한 부부는 비난·방어·담쌓기를 했을 때라도 금방 화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화해 시도란 싸움 도중 감정이 격해질 때나 심한 언행을 했을 때 싸움이 더 크게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불행한 부부들은 싸웠다 하면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다 하는 반면, 행복한 부부들은 말을 조심해서 잘 다듬은 다음에 하고 혹시라도 심한 말을 했을 경우 담쌓기를 하는 대신 화해 시도의 언행으로 금방 상처를 씻어 낸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강의하다가 화해 시도의 중요성을 말하면, 이런 요청을 자주 받는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 머리로는 이해가 잘 되지만 막상 표현하려면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집에 가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좀더 구체적으로 가르쳐 달라』
화해를 이끌어 내는 말들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컴퓨터와 영어를 배우듯 가정의 성공을 위해서도 효과적인 대화법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매우 고무적이다. 다음은 화해 시도가 되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다. 영어단어 외우듯 적어서 가방 속에 넣고 다녀도 좋고,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자주 보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이만큼은 양보할게」
「(당신한테)인정 못 받는 기분이 들어」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상한다」
「좀더 부드럽게 말해 주면 좋겠어」
「큰 그림에서 보면 이 문제는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 일에 대해 내가 참지 못하고 폭발해서 미안해」
「지금 말한 것 취소해도 되지?」
「다시 한 번 말해 볼게」
「어떻게 하면 좀더 잘해 볼 수 있을까?」
「당신의 말은 이건가?」
「당신이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부드럽게 말하고 싶은데 잘 안 돼」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 같아. 잠깐 쉬자」
「사랑한다고 말해 줄 수 있겠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우린 지금 주제에서 너무 벗어난 것 같아」
「난 이것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잘못한 것은…」
「당신의 관점도 일리가 있어」
「정말 좋은 생각이네」
「우리 생각은 그러니까 …란 말이지?」
돈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못 먹는 술도 마셔야 한다. 서툰 노래 솜씨를 연마하기 위해 노래방 레퍼토리를 암기하는 대신 이런 부부 대화를 입력해 놓고 때때로 사용해 보라. 놀랍게도 꽉 막혔던 교통체증이 풀리듯 순한 감정의 교류가 소통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치사하게 이런 말까지 외우고 다녀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 사회의 성공 못지않게 가정의 성공을 위해서도 노하우를 배우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혼 선진국의 親가족 정책
이 글 서두에서 예로 들었던 50代 CEO는 직장과 가족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직장에 충실해 가족이 필요한 경제·사회적 안정과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는 동안 가정이 속으로 곪고 있는 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혼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이젠 직장과 가족을 하나로 보며 「親가족 정책」을 세우고 있다.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실화다. 미국 굴지의 대기업 간부들이 산타페라는 휴양도시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40代 중역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단다. 결혼을 좀 늦게 한 편인 그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유치원생인 막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좀 다쳐서 병원에 가야 한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회의를 다 못 마치고 서둘러 떠나려고 했다.
산타페에서 집까지는 자동차로 20시간, 비행기로 약 3시간이 걸리는 장거리다. 아들의 생명이 위독한 지경이 전혀 아니었고, 놀다 보면 흔히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잘 알았지만 「아내가 오라면 간다!」는 그의 행동에 그 회사 CEO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국 같았으면 아마 회의장 문을 나가기 전에 해고령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뭘로 보나? 그 따위 정신으로 무슨 일을 한다고? 公과 私를 구분할 줄 모르는 얼간이 아니야? 아니, 대체 그 아내란 여자는 간도 크지….
그 회사 CEO는 이 중역의 말을 듣고 선뜻 허락해 주었을 뿐 아니라 회사 전용 비행기를 내주었다고 한다. 『한시라도 빨리 가족에게 가보라』면서. 이런 일이 극히 예외적인 일일까? 아니면 원래 부자들이니까 이런 데 관대하기 때문일까?
미국에서도 1980년대 말까지는 이런 일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CEO라 하면 천문학적 연봉을 주는 만큼 철저히 「부려먹는다」는 기업 정신이 압도적이었다. 50%의 이혼율에 무방비였던 기업들이 큰돈 들여 어렵게 스카우트해 온 우수한 人材들이 사기가 떨어지고 잦은 실수와 결근으로 회사의 애물단지가 되는 일이 잦아져서 원인을 조사했더니, 불안정한 결혼생활, 이혼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일에 미치도록 몰두하거나 회사에 혹독하게 충성한 결과 가정생활이 파괴됐을 때 기업이 장기적으로 입는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방대한 연구에 근거해서 기업들이 「親가족 정책」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혼을 막는 方法을 과학이 이미 규명
개인주의와 프리섹스를 구가하던 이혼 선진국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제 서로 앞다퉈 가며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을 외치고 있다.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연구결과들이 결혼의 중요성을 밝혀 냈기 때문이다.
일반직이든 전문직이든 이혼을 할 경우 그 시점부터 원래의 생산력이 대략 절반가량으로 뚝 떨어지고, 원상태로 회복되는 데 평균 10년이 걸린다. 행복한 결혼은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켜 주어서 회사로서는 의료보험 부담금도 줄어든다. 행복한 결혼은 정신 건강을 증진시켜 집중력·의욕·창의력을 높여 준다.
이런 신빙성 있는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아직도 가족보다 일을 앞세우는 개인이나 조직은 매우 근시안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결혼과 가족을 중요시하지 않는 개인이나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親가족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인주의를 생명처럼 여기던 나라들이 결혼과 가족 살리기를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삼을 만큼 방향 전환을 한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에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방법」을 그대로 채용할 수 있다. 그건 행운이다. 엄청난 개인적·기업적·국가적 비용을 치르고서야 결혼과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유럽과 미국보다 훨씬 빨리 가족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현대과학이 이미 밝혀 냈다. 더 이상 팔자 탓을 하거나 무기력감을 느끼지 말자. 효과적인 방법을 배우고 얼마나 꾸준히 실천하는가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