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패배와 맞물려 ‘레임덕 가속화 기제’될 가능성 높아
정부가 ‘천안함 딜레마’에 빠졌다. 이명박 정부가 ‘선거용’ 의혹을 짙게 받으면서까지 6·2 지방선거 전에 천안함 합동조사단 결과발표(5월20일) 강경 후속조처(5월24일)를 단행했지만, 북풍이 선거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쏟아낸 발언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천안함’은 외교관계, 남북관계, 남한 내부 문제 등 전범위에 걸친 문제인 탓에 이명박 정부가 이 문제를 잘 풀어가지 못하면, 선거 패배와 맞물려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민·관 합동조사단은 지난 5월20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것이라는 요지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북한의 연어급 잠수함이 ㄷ자 형태로 우리 영해에 잠입한 뒤 버블제트 어뢰를 발사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것이다.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5월24일 △ 천안함 사건의 유엔 안보리 회부, △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전면 중단, △ 대북 심리전 재개 및 주적 개념 부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북 강경조치를 발표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신문과 방송들은 이런 정부의 조처를 단순히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좀더 강력한 대북 강경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이런 대북 강경정책이 선거용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선거에 몰아닥칠 북풍의 영향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서 북풍의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강원도를 비롯한 접경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정부의 천안함 강경조처가 ‘역풍’을 맞은 것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천안함 사건은 선거 뒤에도 계속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운신의 폭을 좁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외문제와 남북문제, 남한 내부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천안함 문제를 잘 풀지 못할 경우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을 재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유엔 안보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정부는 4일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식 회부하고 적절한 대북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안보리에서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대북 제재 채택’ 등 외교적 승리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도 남한 정부의 입장에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남북과 중국·미국이 공동조사를 하자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며, 러시아는 지난 5월31일 자체 조사단을 파견해놓은 상태다.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남한 정부의 ‘천안함 외교’에서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적인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낸 상황에서 러시아가 자체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합동조사단 결과에 낮은 신뢰도를 보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커녕 그보다 단계가 낮은 규탄 결의나 의장 성명 채택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이명박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남북간 긴장 상황을 국내 정치에 악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도 이명박 정부가 처한 딜레마 중 하나다. 천안함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1988년 이전의 적대관계로 되돌려놓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말은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극명하게 투영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경책을 선거 이후에도 지속해나간다면 이명박 정부가 너무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무엇보다도 “대북 심리전 확성기 설치→북한의 조준 타격→남한의 대응타격” 등 남북이 공언한 방식으로 무력충돌이 일어나면, 남한 경제는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남북한이 무력충돌을 빚으면 외국인들의 투자 비율이 높은 증시가 급격히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가 지난 5월31일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보류한 것도 남북 관계를 ‘선언’과는 달리 ‘조절’해가겠다는 의사표시에 다름 아니다.
남북관계가 무력충돌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면, 국내 경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도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돼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낮아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천안함과 관련해 남한 당국에 지지 태도를 보내고 있는 미국의 입장이 어느 순간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내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북한 핵문제를 무한정 방치할 수 없으며, 남한 당국의 남북 대결정책이 ‘발목잡기’로 인식되면 남한 정부와 거리두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벌써 미국에서 그런 조짐을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천안함 발표 직후 미국은 항모전단을 파견해 대규모로 연합훈련을 하자는 남한의 방안을 수락했다. 이는 미 7함대 소속 ’조지 워싱턴호’와 이지스 구축함 등이 7일부터 서해상으로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의미했다. 남한과 미국은 대규모 대잠수함 작전까지 전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9차 아시아안보회의 하루 전인 지난 3일 훈련을 2~3주가량 훈련을 연기하자고 요청했다. 이에 한미동맹을 과시하려 했던 남한 군 관계자들은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그 이유로 작전에 필요한 미 7함대 전력을 차출하고 연료와 부식 등을 조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미 합동훈련이 북한과 중국을 자극해 한반도 상황을 좀더 불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 미국이 벌써 이명박 정부와 거리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천안함 정국이 남한 내부에 남겨 놓은 숙제도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천안함 관련 합동조사단 발표에 대한 의문이 선거 뒤에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3일 한겨레 훅(hook, High-quality online Opinion in Korea)에 게재한 ‘그날 천안함을 절단한 폭발은 없었다’ 제하의 칼럼에서 “합조단의 분석결과는 폭발현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외에도 최문순 의원(민주당)은 지난 5월31일 “마커로 쓴 ‘1번’ 글은 폭발이 있었다면 지워질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 의견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폭약량이 250kg이라고 할 때, 폭발 직후 어뢰의 추진 후부의 온도는 쉽게 350도 혹은 1000도 이상 올라간다”고 밝혔다. 마커 성분인 크실렌, 톨루엔, 알코올의 끓는 점이 모두 150도 이하라는 점을 고려할 때, 폭발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마커 글씨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런 천안함 의혹을 풀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숙제를 떠안은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국민을 통합할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리고 한나라당 선거운동원처럼 행동한 데 따른 당연한 업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천안함과 같은 신중한 문제는 선거가 끝난 뒤, 국민통합과 국가 이익, 남북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확실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올바른 대통령의 자세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여당의 선거운동을 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천안함 관련 정책을 졸속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의도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이제 풀기 어려운 더 큰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훗날 역사교과서에 “북풍을 이용하려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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