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토요일, 제주.
이날따라 일기예보 적중률은 100%.
비바람이 분다.
아니 휘몰아친다.
이런 비바람을 뚫고 한림읍 귀덕리 바닷가에 위치한 2층짜리 소박한 건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훤칠한 키에 머리 노란 외국인을 비롯해 오늘 아침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는 부부와 새침한 여대생까지.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영화배우, 회사원, 농부, 화가, 건축가에 주부...
저마다 다른 삶터와 직업을 가진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힘은 무엇일까?
신세대 해녀들을 양성하는 곳, 한수풀 해녀학교를 찾았다.
“소라 하나 더 캐려고 계속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어요. 뭔 말인가 알겠수꽈?”
“네!”
한수풀 해녀학교의 임명호 교장은 바다에서의 안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얼추 50여명이 들어 찬 2층 강의실.
설렘으로 상기된 얼굴의 학생들이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물질 나가기만을 기다린다.
한수풀 해녀학교는 2007년 제주도가 9억9천만원을 투입해 운영한 지방자치센터 특성화사업의 하나로 한림읍의 자금지원을 받아 사무실을 열었다. 2008년 제 1기생을 맞아 34명을, 2009년에는 3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리고 올해 3기는 이주여성과 재미교포를 포함한 외국인 7명과 도내주민 35명, 도외 거주자 13명, 모두 55명을 선발했다.
지난 5월 8일 시작한 수업은 8월 28일까지 4개월간 매주 토요일 3시부터 5시까지 실시되며, 해녀학교답게 오직 실기 수업으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호흡법과 잠수법, 오리발 노는 법을 배운 뒤, 학생들이 잠수에 익숙해지면 바다 밑 소라 채취와 경쟁을 통한 평가를 하게 된다.
강사도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이 직접 맡는데 최고령 선생님의 나이가 자그마치 78세다. 30명의 선생님이 5조로 나누어 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이 모든 과정이 무료이지만 3번 결석하면 제명당할 정도로 교칙은 까다롭다.
드디어 학생들이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바다에 풍덩 자신 있게 들어간다. 들고 있는 우산이 바람에 꺾일 정도로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파도도 심하게 요동을 친다. 역시 제주의 명물답게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궂은 날씨에도 해녀수업이 가능할까? 임명호 교장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이맘때가 수업하기에 좋은 날씨라고 한다. 5월부터 8월까지는 한라산에서 바다 방향으로 남풍이 불기 때문에 파도가 높지 않아 태풍만 불지 않으면 언제든 수업이 가능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우산을 포기한 채 비바람을 맞고 서 있는 취재팀과 달리,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학생들이 훨씬 더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이들이 해녀학교에 입학한 이유도 천차만별이다. 물이 두려워서 수영을 못하는 40대 주부는 잠수라도 배워 바다와 친숙해지고 싶어 입학을 결심했고, 영화 <놈놈놈>에 출연한 영화배우 조덕제는 배우 경험을 쌓기 위해 화가인 아내와 함께 매주 토요일 아침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올해 3기는 그 어느 때보다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열의도 대단합니다. 1시간 40분 수업인데, 마칠 때면 더 하자고 성화입니다”
임명호 교장은 3기생들의 열정이 마냥 흐뭇한지 쉴 새 없이 학생 자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물질을 통해 제주문화를 알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한림읍 귀덕리의 아름다움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억척스러운 우리의 어머니, 강인한 제주 여성의 표상인 해녀가 최근 고령화 되고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07년 제주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제주해녀가 5,406명으로 그 중 60세 이상이 3,557명으로 66%를 차지한다. 지난 70년 전체 해녀수 1만4,143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4.6%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고령화와 감소 현상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로 가다보면 20년 후에는 지금 해녀의 15%밖에 안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은 세대들에게 해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사람, 해녀 홍보대사 역할을 해줄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한수풀 해녀학교의 설립목적이자 교육 목표다.
한수풀 해녀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졸업한 학생 가운데 5명이 현재 해녀로 활동 중이다. 제주 해녀 문화를 전승하는 것과 동시에 귀덕리를 홍보하는 문화 상품으로서 해녀학교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여성성을 느낄 수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여 제주 특유의 해녀문화와 바다를 더욱 친숙하게 이어주는 전 세계인의 징검다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한수풀 해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면?
학교를 운영하는 제주 한림읍사무소에서
해마다 3월이면 한수풀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 공고를 낸다.
4월에 접수를 하고 서류심사를 거치면 5월 입학식을 갖고
3개월 동안의 본격적인 교육을 받은 뒤 8월 졸업식을 하게 된다.
수강료는 없음!! ^0^
전화문의: 064-728-7692
외국인 해녀, 쉐린 히바드 [한수풀해녀학교 2기 졸업생 - 쉐린 히바드]
쉐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에너자이저’다.
풍부한 얼굴 표정과 부지런한 손동작에 열정과 활기가 묻어난다.
그녀와 마주 앉은 사이, 맙소사! 이효리도 아닌데 10분 만에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다.
쉐린은 호주 출신으로 18살에 집을 떠나 노르포크섬,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스리랑카 등을 여행했다. 일본에서 뉴기니까지 항해를 한 적이 있으며 우리나라에 오기 전 직업은 파푸아뉴기니 운송회사 지사 책임자였다. 그야말로 정착을 모르는 타고난 여행자, 휴먼 노마드 (유목민)이다.
지금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를 맡고 있는데 제주생활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좋아하는 바다가 언제나 가까이 있고,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그녀. 한수풀 해녀학교 임명호 교장은 2기 졸업생인 쉐린을 아주 특별한 졸업생으로 기억한다. 어부 출신의 외국인이라는 점, 다른 학생들이 소라를 캐러 올 때, 바다 밑 쓰레기를 주워오는 모습이 남달라 보였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지난 5월 11일 열렸던 제주해녀물질대회에 참여해 다른 60명의 대한민국 해녀들과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그녀의 물질 실력은 61명 중 61등. 잠수는 잘하지만 소라를 비롯한 해산물 캐는 일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쓰레기 줍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쉐린은 제주가 너무 좋아 제주 바다를 더 깨끗하게 하자는 캠페인성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수영으로 제주도 해안 일주를 위해 오늘도 맹훈련중인 그녀를 만나보자.
Q. 국립수산과학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해양의 생존을 위해 국립수산과학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수산과학원이 지속가능한 수산자원 관리에 관한 중요한 이슈에 대해 국민의 인식을 높여주기를 바랍니다. 수산물에 대해서, 수산물 구입에 대해서,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파워가 크지만, 긍정적인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정보를 제공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Q. 해녀학교에는 어떻게 입학하게 되었나요?
호주에는 해녀가 없어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직업입니다. 더구나 제 자신이 어민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해녀들이 궁금해서 해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바다에서 장비를 사용하는 것과 바다와 익숙해지는 것을 배웠는데요. 학생들 대부분이 잠수복이나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하는 것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Q. 같은 어민으로 한국 어민들에게 할 말이 많다면서요?
저는 12년간 호주에서 어업에 종사한 어민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어획이 우리 해양에 미치는 피해를 직접 목격하였으며, 제가 한국의 어민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오늘 무엇을 잡을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5년 후에 무엇을 잡을까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내가 수산 자원 고갈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서식지 훼손 및 생태계 손실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Q. 제주 해안을 수영해서 일주하는 이벤트는 무엇을 위해 하는가요?
제주 바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성 이벤트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선택의 문제입니다. 친구인 스티브 오버하우저가 카약을 타고 동반하는데, 스티브는 미국 출신으로 지난 2008년 제주로 건너왔습니다. 미국에서 기자와 교편을 잡았고 강에서 급류타기와 카약타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영으로, 스티브는 카약을 타고 동반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도전거리는 약 200km, 총 수영기간은 30일 가량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Q. 언제 어떤 경우, 한국에 오래 살았구나~ 하고 느껴지나요?
굿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 한국인이 다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Q.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의 행동이 있다면?
저는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왜 계속 환경을 잘못 다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불법적으로 플라스틱을 태우는 일, 말입니다. 쓰레기 처리는 엄청나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 모범을 보이고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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