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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농사’로 싱싱한 콩나물

마른땅 2014. 1. 20. 10:10

주전자 농사’로 싱싱한 콩나물

등록 : 2013.12.10 19:52 수정 : 2013.12.10 20:41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밥상

아침에 일어나니 콩나물이 주전자 뚜껑을 밀어올리고 있다. 물을 주려고 뚜껑을 여니 콩나물 대가리가 와글와글. 시원하게 물을 한차례 주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다 따라낸 다음 콩나물을 뽑는다. 주전자 위로 올라온 놈만 뽑았는데도 한 바가지다.

웬 콩나물이 주전자에서 나오냐고? 마술은 아니고, 주전자에 콩나물콩을 안치고 물을 주고 따라내고 뚜껑을 닫아놓기를 며칠 되풀이하면 주전자에서 콩나물이 자란다. 주전자에 녹두를 넣으면 숙주나물, 밀을 넣으면 밀 싹이 올라온다. 논농사, 밭농사…, 그렇다면 이건 주전자 농사?

어느 집이나 뒷방으로 물러난 주전자가 있으리라. 주전자에게 새 일을 주자. 콩나물을 기르는 거다. 농사를 지으려면 먼저 씨앗인 콩부터 구해야 한다. 콩나물은 아무 콩이나 다 되는 게 아니라 따로 있다. ‘(콩)나물콩’ 알이 쥐씨알만하게 작은 오리알태나 쥐눈이콩이 대표적이다. 이걸 해콩으로 구한다. 싹을 틔워야 하니까 묵은 건 안 된다.

콩을 구했으면 이제는 동글동글 제대로 여문 놈만 고른다. 씨앗이 좋아야 농사가 잘된다. 한곳에 모아 기르니 더욱 그렇다. 쭉정이가 섞이면 그게 상하면서 물귀신이 된다. 한컵 반의 콩을 골라 정하게 씻고 2ℓ들이 주전자에 넣어 물을 3컵 붓고 6시간쯤 불린다. 콩이 다 붇고 보글보글 공깃방울이 올라오면 생명활동이 시작됐다는 증표다. 그때부터 물을 주고 따라내기를 되풀이. 하루에 여러차례 할수록 좋다. 정수기 물은 안 되고, 수돗물을 하룻밤 가라앉혀 쓰면 된다.

콩은 처음에는 붇다가 생명이 살아나 숨을 쉬기 시작하면 열도 난다. 신선한 물로 목도 축이고 열도 식히고 땀도 닦아내줘야 콩나물이 자랄 수 있다. 이삼일이면 껍질이 갈라지고 다시 이삼일이 지나면 손톱만하게 자라고. 다시 이삼일, 손가락만하게 자라면 이때부터 뽑아 먹을 수 있다. 다 자랐으면 냉장고에 두면 된다.

주전자 농사 덕에 아침마다 싱싱한 콩나물을 먹는다. 나물을 할 때는 보통은 적당히 삶아서 무친다. 이론상으론 참 간단한데 ‘적당히’가 어렵다. 게다가 중간에 뚜껑을 열면 비린내가 나니 열어 볼 수도 없고. 여간해서는 아삭아삭한 맛이 나지 않고 국물만 흥건하기 쉽다. 그렇다고 기름에 볶아내면 아삭거리긴 하지만, 오늘은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콩나물을 먹고 싶다. 기름 없이 볶을 수는 없을까?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을 달구다가 물을 기름보다 좀 넉넉히 두르고 그게 보글보글 끓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전체로 열기가 후끈할 때 콩나물과 소금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팬 뚜껑에 물방울이 맺힐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다른 재료를 준비한다. 마늘을 다지고 양파와 대파를 채쳐 놓고. 김이 방울져 내리고 콩나물 줄기 색이 바뀌면 뚜껑을 열고 양파를 넣고 볶아주기 시작했다. 몇 번 뒤적이니 금방 콩나물에 숨이 죽는다.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마늘 다진 거와 대파 송송. 불을 끄고, 접시에 내면서 고춧가루와 들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오늘은 담백하면서도 싱싱한 콩나물 대령이오!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