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들은 늦도록 농장과 등산로를 오가며 얘기를 나눴고, 마침 보름달이 떠서 대낮처럼 밝은 밤에 사물놀이까지 해가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다음 날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는 참나물, 두릅, 오가피잎, 고사리가 들려 있었고 내가 겨우내 보관해두었던 시래기와 호박고지도 나눠주었다.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거 돈 받고 팔아야 되는 거 아녀요?” 돈 받을 만한 가치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치 돈 받고 팔아야 되지않겠냐는 그분의 지적은 내 노동력에 대한 존중과 함께 내 생산품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 것이라 본다. 곱게 삶아 말린 자연농 무시래기를 그냥 받는 고마움의 표시기도 했으리라.
돈. 돈은 유용할 뿐 아니라 편리하다. 남의 정성에 대해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아주 적절하게 성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편리함대로 내가 시래기 값을 받는다면 얼마가 적당했을까? 대충 시장 가격의 세 배? 생협에서 파는 유기농 시래기의 1.2배? 자, 그렇다면 아침에 우리 집 뒤에서 뜯은 참나물과 고?리, 그리고 어젯밤 밤잠을 설치게 했던 보름달은 값어치가 없는 것일까? 덕유산 자락을 넘나들던 쾌청한 공기도 한 푼어치의 가치가 없는 것인가.
물론 값어치가 있다. 내 것이 아니니까 내가 돈을 받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닌 걸 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시장에서는 돈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고, 사람의 마음과 정성은 돈으로는 따져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소중한 것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내 시래기가 생협 가격의 두 배를 받는다 쳐도 그순간 시래기의 인격성이 박탈되어 버린다. 내 정성이나 ?씨는 현금의 액면가에 함몰된다. 시래기 값으로 치러진 꼭 그 액수만큼의 값어치로 폭삭 내려앉는다.
17년 귀농 생활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럴 때는 그냥 나누는 것이 몇 배 좋더라는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뿌듯한 충만감이 생긴다. 그 충만감이라는 게 요상한 것이어서 돈으로 받으면 생기지 않는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시골에 가서 살 때 당연히 벌이가 있어야 하는데 뭘 기준으로 벌이를 정할 것이냐?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일은 즐겁게, 또는 즐거운 일을 골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행동과 선택은 그렇지 않다. 일을 정할 때 기준이 뭘까?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나온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한국인은 소득,안정성, 사람 관계, 성취감 중에서 가장 우선이 안정성이다. 일본은 28%이고, 한국은 44%이다.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것도 일본은 30%지만 한국은 7%다. 소득 비중도 한국이 일본보다 많이 높다.
시골에 가서 살게 되면 그 사람의 재주와 경험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시골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수히 나올 것이니 참고하면 될 텐데 중요한 것은 이때 뭘 기준으로 자기 할 일을 정할것인가이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해월 최시형(1827~1898, 동학의 제2대 교주)은“ 만심쾌재이후滿心快哉而後라야 능위천지대사의能爲天地大事矣”라고 했다. 마음이 흐뭇하고 유쾌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즉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욾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즐기는 것이 최고라는 의미다. 이를 악물고는 속으로 삭이고 참아가면서 하는 일이라면 헛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고 거룩한 소임이라 해도 짜증내고 원망하면서 하면 도루묵이 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든 흐뭇하고 유쾌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관계도 잘 풀리고 건강도 좋고 보람도 있다.
귀농해서 가장 성공한 사례는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자기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의 종류나 벌이의 수준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귀농할 작정을 했다면 이제 그런 습관화된 기준은 폐기할 용?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좋아하지도 않고 즐겁지도않으나 해야만 하는 일. 그런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마음을즐겁게 전환하면 된다. 자기 암시를 통해 할 수도 있고, 간단한 기법을 이용할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라 하는데 의식적인 자기 조절작용이라 하겠다.
큰 결단을 하고 귀농을 했으니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즐거운 일만 골라서 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하슴 비법이 있을까? 있다. 자기 존재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다. 살면서 헛짓하는 게 참 많다. 그 헛짓만 중단해도 삶은 즐겁고 행복하다. 자신에 대한 본성을 찾는 길은 꾸준한 수행이다.
교환의 수단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돈이 그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변질된 지는 오래다. 다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는 인격의 척도로까지 돈은 타락해버렸다. 귀농해서 지자체에서 권하는 소득 작물은 사양했으면 한다. 일 속에,아니 돈 속에 사람이 종속되어버리는 것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호혜시장互惠市場, 신시神市(5000년 이전 우리 민족의 공동체), 홍익시장 운동이 바로 돈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슴 자각된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귀농해서 하는 일은 돈에 매인 일이 아니라 감히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들, 즐거운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돈. 돈은 유용할 뿐 아니라 편리하다. 남의 정성에 대해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아주 적절하게 성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편리함대로 내가 시래기 값을 받는다면 얼마가 적당했을까? 대충 시장 가격의 세 배? 생협에서 파는 유기농 시래기의 1.2배? 자, 그렇다면 아침에 우리 집 뒤에서 뜯은 참나물과 고?리, 그리고 어젯밤 밤잠을 설치게 했던 보름달은 값어치가 없는 것일까? 덕유산 자락을 넘나들던 쾌청한 공기도 한 푼어치의 가치가 없는 것인가.
물론 값어치가 있다. 내 것이 아니니까 내가 돈을 받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닌 걸 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시장에서는 돈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고, 사람의 마음과 정성은 돈으로는 따져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소중한 것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내 시래기가 생협 가격의 두 배를 받는다 쳐도 그순간 시래기의 인격성이 박탈되어 버린다. 내 정성이나 ?씨는 현금의 액면가에 함몰된다. 시래기 값으로 치러진 꼭 그 액수만큼의 값어치로 폭삭 내려앉는다.
17년 귀농 생활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럴 때는 그냥 나누는 것이 몇 배 좋더라는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뿌듯한 충만감이 생긴다. 그 충만감이라는 게 요상한 것이어서 돈으로 받으면 생기지 않는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시골에 가서 살 때 당연히 벌이가 있어야 하는데 뭘 기준으로 벌이를 정할 것이냐?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일은 즐겁게, 또는 즐거운 일을 골라서 사람들은 누구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행동과 선택은 그렇지 않다. 일을 정할 때 기준이 뭘까?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나온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한국인은 소득,안정성, 사람 관계, 성취감 중에서 가장 우선이 안정성이다. 일본은 28%이고, 한국은 44%이다.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것도 일본은 30%지만 한국은 7%다. 소득 비중도 한국이 일본보다 많이 높다.
시골에 가서 살게 되면 그 사람의 재주와 경험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시골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수히 나올 것이니 참고하면 될 텐데 중요한 것은 이때 뭘 기준으로 자기 할 일을 정할것인가이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해월 최시형(1827~1898, 동학의 제2대 교주)은“ 만심쾌재이후滿心快哉而後라야 능위천지대사의能爲天地大事矣”라고 했다. 마음이 흐뭇하고 유쾌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즉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욾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즐기는 것이 최고라는 의미다. 이를 악물고는 속으로 삭이고 참아가면서 하는 일이라면 헛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고 거룩한 소임이라 해도 짜증내고 원망하면서 하면 도루묵이 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든 흐뭇하고 유쾌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면 관계도 잘 풀리고 건강도 좋고 보람도 있다.
귀농해서 가장 성공한 사례는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 자기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의 종류나 벌이의 수준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았으면 한다. 귀농할 작정을 했다면 이제 그런 습관화된 기준은 폐기할 용?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좋아하지도 않고 즐겁지도않으나 해야만 하는 일. 그런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마음을즐겁게 전환하면 된다. 자기 암시를 통해 할 수도 있고, 간단한 기법을 이용할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부조화라 하는데 의식적인 자기 조절작용이라 하겠다.
큰 결단을 하고 귀농을 했으니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즐거운 일만 골라서 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하슴 비법이 있을까? 있다. 자기 존재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다. 살면서 헛짓하는 게 참 많다. 그 헛짓만 중단해도 삶은 즐겁고 행복하다. 자신에 대한 본성을 찾는 길은 꾸준한 수행이다.
교환의 수단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돈이 그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변질된 지는 오래다. 다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는 인격의 척도로까지 돈은 타락해버렸다. 귀농해서 지자체에서 권하는 소득 작물은 사양했으면 한다. 일 속에,아니 돈 속에 사람이 종속되어버리는 것을 무수히 봐왔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호혜시장互惠市場, 신시神市(5000년 이전 우리 민족의 공동체), 홍익시장 운동이 바로 돈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슴 자각된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귀농해서 하는 일은 돈에 매인 일이 아니라 감히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일들, 즐거운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