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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오랑세오녀'는 일본 고대왕국 건설 주역

마른땅 2010. 6. 9. 10:55

포항사람 '연오랑세오녀'는 일본 고대왕국 건설 주역
연오랑 세오녀의 자취를 찾아서 - 1 연오랑 세오녀는 일본의 왕이 됐나?

1285년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쓴 연오랑과 세오녀는 그다지 길지 않는 총 237자로 된 이야기로 말 그대로 읽기 편하게 돼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일간의 교류 이야기를 싣고 있어 여러 가지 사실들을 말해준다.

신라 제 8대 아달라 이사금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연오랑이 바다로 나갔다가 불현듯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 가버렸다. 일본 사람들은 그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왕으로 추대했다

이렇게 바다로 건너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세오녀는 남편을 찾아 바닷가로 나가 보았더니 바위 위에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이 있었다. 세오녀가 그 바위 위에 올라서자 이내 또 바위는 세오녀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왕은 그녀를 맞아 귀비(貴妃)로 삼았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 아달라왕은 사신을 일본에 보내 연오랑과 세오녀에게 신라로 돌아오기를 청했다.

그러나 연오랑은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는가. 내 아내가 짠 고운 명주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져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예전과 같이 빛을 되찾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신이 신라로 돌아와 연오랑이 시킨대로 했더니 해와 달의 정기가 돌아와 다시 광채를 비추었다. 그래서 이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불렀고, 제사를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도기야(都妓野)라 부르고 아주 귀히 여겼다고 했다.

한·일 고대사를 연구하는 이영희 교수(포스코 인재개발원)는 설화의 형식으로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를 한일고대사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설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서기 157년 포항 도기야에 있던 제철기술집단이 대거 일본에 진출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이를 뒷받침할만한 명소가 있다.


□ 일월지는 제철 용수지

연오랑 세오녀와 관련된 연못은 포항해병사단내에 있는 일월지(日月池)다. 일월지는 곧 고대의 제철 용수지(用水池)로 당시에는 쌍둥이 연못으로 알려졌다. 일지라 불린 연못은 큰 연못으로 그 깊이가 4m나 됐으며 월지(月池)는 여름이면 연꽃이 가득피는 작은 연못으로 근처 포도밭에 물을 대기 위해 판 것이라는데 원래는 일지와 월지가 하나였다는 설도 있다.

1970년 세웠다는 연못가 비석 비문의 '일월지 연혁'에 의하면 옛부터 이곳에는 일월사당이 있어 해와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일제강점기때 헐어버렸고 해방 후 미군이 이 일대를 기지로 삼으면서 연못을 1천평 가량이나 메워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일월지는 해병 사단내에 정갈하게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찾아가 볼 수 없어 아쉽다. 들어가려면 해병사단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있다.

일찌기 도기야라 불린 이 바닷가 언덕은 "꽤 붐비는 제철장이었다"는게 이영희교수의 말이다.

형산강과 오천은 원래 질좋은 사철이 많이나는 무쇠의 하천이었다는 것. 냇물이 흘러드는 바닷가에는 화력좋은 소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땔깜도 풍부했고 바닷가 바로 위 언덕배기에는 넓은 연못 일월지가 있어 쇠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일현은 지금의 포항, 도기야(都祈野)는 도구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해병대 사령부 일대의 언덕이다. 일찍이 '몰개월'이라 불리기도 했던 도기야는 지금의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60번지 일월지 연못가 일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일월에 제사지내던 지역이 '도기야' 로 기록돼 있는데 일제가 도기야를 도구(都丘)로 변경시켰다. 현재 동해면 도구리에는 일월사당이 있다.

이 교수는 "'일본서기'를 보면 일본 제11대 왕 수이닌 3년 3월, 신라 왕자 아메노히보코가와서 하리마국에 머물렀고 그는 이 때 구슬, 창, 거울 등 일곱 가지 신물을 가져왔다는 기록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또 '고사기'와 일본 고대 지방사서인 '풍토기' 등에도 '천일창'이 자주 등장하고 특히 '고사기'에는 천일창의 아내가 일본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으로 간 천일창의 아내 이름은 아카루히메로 '빨간 구슬' 즉 '아카타마'가 변신한 여인이라 해서 이렇게 불렀다는 것.

'아카'는 우리 옛말 '아가'가 일본음화 된 것이며 '아'는 원래 '끝'을 나타낸 낱말이었으나 모든 '칼붙이'를 뜻하기도 했고 '가'는 '간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아카'는 '칼붙이갈기' 즉 '철기 제조'를 의미하며 '타마'는 '탐'으로 '으뜸', '우두머리'의 옛말이어서 '아카타마'는 '철기제조 우두머리'를 뜻하는 우리 고대어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본 고대사에 나오는 신라 왕자 천일창과 관련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세오녀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이 교수는 결론짓는다.

□ 세오녀와 신공황후


이 교수는 또 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감에 따라 신라의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는 것은 제철기술자 집단이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에 고로에 불이 꺼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 교수는 탁월한 상상력과 한일고대사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담고 있는 좀 더 깊이 있는 의미들을 끌어내고 있다.

왕의 부탁을 전하러 일본으로 온 사신에게 세초, 즉 비단이 전해지는데 이는 단순한 비단이 아니라 제철 또는 철기를 만드는 기술을 상세히 적은 문서로 볼 수 있고 '세초'는 '쇠지어'를 나타낸 이두 표기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세오녀는 누구인가.

포항의 고대지명은 근오기(斤烏伎)다. 북의 36도인 영일 근오기에서 똑바로 동쪽으로 가면 일본 오키섬에 가 닫는다. 또 곧바로 남하하면 일본 고대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이즈모국에 가 닿는다. 이즈모 역시 이름난 철 산지였다. '근오기'는 '큰 오기' 즉 '크게 오가는 항구'라는 뜻.

아달라왕 20년(174년) 신라로 사신을 보낸 왜의 여왕 히미코는 세오녀와 동일 인물은 아니었을까.

이영희 교수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공황후가 히미코임을 알 수 있고 그 히미코가 곧 세오녀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주장을 간추리면 '연오랑세오녀'는 포항 사람으로 당시의 제철기술 등 첨단기술을 일본에 전한 인물일 뿐 아니라 일본 고대 왕국을 건설한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2000년 6월17일, 포항 역사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연오랑세오녀상'이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호미곶'에 그 웅건(雄建)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역민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이 상은 포항시 승격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영암장학문화재단 황대봉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건립함으로써 새로운 세기의 포항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우뚝섰다.

따라서 연오랑세오녀상이 담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설화 속에 담긴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보며 포항이 철과는 무관한 도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출처 :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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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착한아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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