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의 이름은 ‘Y-house’(와이하우스). 건물 용도는 다세대 주택, 통상 ‘빌라’다. 지난 5일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건물 대지의 경사를 이용해 만든 공동 쉼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이 건물이 들어서고 나서 그래도 이 동네가 좀 밝고 깔끔해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웬 회사가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왔나 싶었는데 빌라라고 해서 놀랐어요” -금호동 2가 인근 주민
와이하우스는 전용면적 85㎡ 4가구, 115㎡ 2가구로 구성된 다세대주택으로 115㎡형은 2개 층을 터 놓은 중층 스튜디오 방식으로 설계됐다. 도로와 접해 있는 115㎡형 2가구는 북향으로 사무실 겸 준(準)주거공간으로 사용할 사람들을 위해 설계됐다. 북향보다 주거공간으로서 가치가 높은 남향 쪽에는 85㎡형 4가구가 층마다 자리하고 있다.
이 빌라의 설계자인 ‘와이즈건축’의 부부 건축가 장영철(41)·전숙희(36)씨는 “향(向)은 채광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건축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며 “큰 고민 없이 설계되는 수많은 빌라는 북향에도 남향과 같은 형태의 유닛을 껴 넣지만, 이는 주택 가격을 하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빌라는 외부에서 바라볼 때 더욱 독특하다. 도로를 접한 2개 면에 반(半)투명의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를 붙여 내부에 조명을 켜면 은은하게 빛이 외부로 퍼진다. 기능적으로도 이 자재는 단열 성능이 우수하고 고음의 소음 방지 효과가 있다.
전숙희 건축가는 “천편일률적인 빌라 촌에 한국에서 잘 쓰지 않는 소재를 쓴 독특한 디자인의 빌라가 들어서자 주위에서 관심이 많다”며 “인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임대를 내놨지만, 계약자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현재도 계속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집장사’에 당하지 말고 설계·시공·감리 따로 하세요”
“이 건물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보급형 주택임에도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건물의 가치를 높였고, 시공 비용도 일반 신축 빌라와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장영철 건축가
이 건물의 짓는데 든 비용은 3.3㎡당 350만원으로 설계사무소가 아닌 소위 ‘집장사’를 통해 설계·시공·감리를 진행한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오히려 이 건물의 건축주가 장영철·전숙희 건축가를 만나기 전 금호동 인근의 집장사에 받아온 견적은 3.3㎡당 380만원이었다. 건물 설계를 ‘찍어 내듯’ 하루 이틀에 해버리는 ‘집장사’와 달리 통상 3~4개월을 설계에 몰두하는 건축가가 책정한 비용이 더 쌌던 것이다.
전숙희 건축가는 “‘집장사’ 업자들은 건축주에게 설계·인허가·시공·감리까지 모두 묶어 ‘패키지’(package)로 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접근하지만, 대부분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나 시공 중 한쪽을 희생시킨다”며 “설계를 고민 없이 하루 이틀에 찍어내거나, 시공 과정 중 자재를 싼 것을 사용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또 “시공과정을 검사하는 감리 절차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고용하기 때문에 감리 절차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장영철·전숙희씨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기존 건축의 관심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건축 작업을 펼쳤다는 평가였다.
이 부부 건축가는 다세대 주택 건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서울시만 놓고 보더라도 다세대·단독주택 수요가 아파트를 뛰어넘지만, 아파트 만큼 다세대 주택 건축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혁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영철 건축가는 “와이하우스가 완공된 이후 세간의 관심을 끌면서 SH공사 관계자도 이곳을 방문했다”며 “서울시 측에서도 300~500평 수준의 자투리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주거 품질을 높인 다세대 주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건축가는 향후 이와 관련된 작업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두 건축가는 열악한 국내 건축 환경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혁신적인 다세대 주택의 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숙희 건축가는 “미국·영국·프랑스·일본의 경우를 보면 시(市) 자체적으로 역량 있는 건축가 풀(pool)을 운영하면서 그들이 서로 팀을 이뤄 공공 건축 부문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며 “그러나 국내의 경우 5000만원 이상의 발주는 입찰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젊은 건축가들은 도전할 수도 없을 만큼의 실적을 요구해 창의적이고 최신 트렌드에 맞는 건축 설계가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