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해 성공하는 기업 CEO 금형전문가 김기현씨, 가격영향 덜한 과일가공 도전 기업 임원출신 양예영ㆍ황규선 부부, 신품종 씨앗 키워 식재료 개발 물류업 사장 심종철씨, 친환경 작물 고부가로 승부수 품질관리사 출신 정상철씨, 옆집 거들면서 배운게 내 재산
승종 블루베리코리아 대표가 충남 천안 입장면에 있는 농장에서 잘 익은 블루베리를 지난여름에 수확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영하듯이 치열하게 뛰어들면 농업에서도 성공 못할 것이 없지요."
귀농을 준비하는 기업인은 늘고 있지만 누구나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다. 막연히 전원생활을 꿈꾸다 농업에 실패하거나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년기를 농촌에서 보낸 데다 유통과 가공시설 관리 노하우 등 이들이 가진 경쟁력을 감안해보면 성공 가능성 역시 상당히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매일경제신문은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귀농에 나섰던 선배 귀농 CEO들과 현재 귀농을 준비 중인 예비 귀농인들을 만나 속얘기를 들어봤다.
◆ 금형전문가 김기현 사장
=경기도 여주에서 성문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기현 사장(52)은 금형설계 전문가로 40대까지 금성통신, 정우공업에서 일하면서 기술영업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대부분의 귀농 CEO처럼 그도 전원생활에 목말라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큰아들 진배(19)가 아픈 것도 귀농에 큰 계기가 됐다.
김 사장의 큰 아들 김진배 군은 다운증후군이다. 김 사장은 "식구들이 처음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무엇을 잘못했기에 우리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까란 생각을 하다가 먹을 것과 사는 곳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귀농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김 사장의 꿈은 진배를 귀농 CEO 2세로 만드는 것이다.
김 사장은 2000년 3월 처음 7000평의 땅을 산 뒤 복숭아 4000평, 자두 3000평을 심었다. 자두 농사는 초보자가 하기엔 어려운데 아무런 조사 없이 자두를 선택해 낭패를 봤지만 사과로 작물을 바꾼 뒤 자리를 잡았다. 김 사장은 이제 귀농 10년차가 되면서 실제 수입이 5000만원 정도다. 그에게 귀농 노하우를 물었다. 김 사장은 "귀농에서 사람과의 유대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미리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지역주민과 교류하면서 땅의 풍토와 기후에 따른 농사경험 그리고 좋은 품목과 품종들에 대한 정보를 잘 얻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농업은 가격 변동에 따라 손해도 많이 나는 만큼 김 사장은 앞으로 가공 분야에 도전할 계획이다. 농식품가공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한국벤처농업대학 대학원과정에 들어갔다. 김 사장의 앞마당 장독대들은 거의 '연구실' 수준이다. 그는 "복숭아 고추장, 된장, 복숭아 말랭이, 복숭아 와인 등이 저 장독에서 숨 쉬고 있다"면서 "가족끼리 머리 맞대서 연구하고 만들어서 맛보면서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양예영, 황규선 부부
김기현 성문농장 대표가 부인과 함께 경기 여주 강천면 소재 자신의 농장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성중 기자>
=양예영 전 아시아나 상무(62)는 6년 전 퇴직한 뒤 부인 황규선 숙명여대 디자인대학 겸임교수(59)와 귀농을 준비 중이다. 부인의 또 다른 직업은 푸드네이터.
황규선 씨는 "먹을거리 전반을 연출하는 게 푸드네이터인데 이 일을 하다 한국에 식재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신메뉴를 개발하려 해도 식재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던 황씨는 일본에서 씨앗을 사다가 농민들에게 소개하면서 직접 귀농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다.
남편 양예영 씨가 1년 전부터 간질환을 앓게 된 것도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됐다. 양씨는 부인과 함께 귀농 전문가들을 만나고, 농촌을 다니면서 농촌의 좋은 환경과 건강한 삶을 접하게 됐다. 황씨는 "남편은 처음 건강 문제로 귀농을 생각하게 됐지만 식재료 개발을 함께 할 예정"이라면서 "도시에서만 살아온 남편에게 농촌에서 여유 있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20년간 살았던 이들 부부는 일본 농촌의 정보도 수집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벤처농업대학 학생들과 일본 시즈오카현 농촌을 방문하기도 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황씨는 "일본 농촌에서 농작물을 가공하거나 포장할 때 도시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예를 들면 된장, 고추장을 큰 통에 넣어서 팔면 도시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지 않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농민들은 도시인들의 생활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물류ㆍ창고업 사장 심종철 씨
귀농 커플로 제2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황규선(맨앞)ㆍ양예영(오른쪽) 씨 부부가 지난여름 농장에서 자녀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인천에서 물류ㆍ창고업을 하는 주식회사 아린 대표 심종철 씨(52)는 농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심 사장은 "서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어 생활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며 "사업적으로도 농업의 전망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 사장은 신중히 준비 중이다. 2~3년 내 귀농을 계획하고 있는 그는 지금은 고향 충남 안면도에 맞는 작물을 찾고 있다.
감이나 무화과를 고려 중이고 천일염 체험장과 같은 도시민들이 와서 쉴 수 있는 자연공원도 기획 중이다. 심 사장은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귀농을 준비하고 있고, 아내 유향숙 씨(46)도 현재 경희사이버대 외식식품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하며 귀농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는 "결국 농업도 친환경 쪽으로 가면서 가격이 많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농업의 규모가 커지고 고부가가치 식품을 생산하면 이제 농사를 짓는 것이 웬만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 품질관리사 출신 정상철 사장
=대학을 졸업하고 품질관리기사 자격증을 따 회사에서 근무했던 정상철 씨(41)는 스물아홉 살이란 이른 나이에 귀농한 12년차 베테랑이다. 토마토 농장을 전문으로 하는 그는 첫해에 기반이 없어서 다른 영농인 옆에서 1년 동안 농사일을 거들면서 배웠다. 이듬해 자기 농사를 시작했는데 결과는 성공이었다. 욕심 안 부리고 작은 면적부터 시작했기 때문으로 그후 경지면적을 넓혀나가자 감당이 안돼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업인 출신 귀농인이 많이 들어오는 데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정 사장은 "대기업 임원분들을 보면 두 부류더라"면서 "뭐든지 시키는 지시형 CEO 습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기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처럼 서류를 꼼꼼히 살피고 준비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 사장의 분석이다.